선(線)에서 선(禪)을 찾다

선(線)에서 선(禪)을 찾다

March 09, 2011 Newsweek Korea Jung-Hyun Seo

선(線)에서 선(禪)을 찾다
在美 ‘볼펜화가’ 이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작품 걸려
서정현 기자

볼펜으로 그렸는데도 수묵화 냄새가 난다. 그림 속의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꿈틀거린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작품을 두고 “펜 놀림을 새로운 예술로 끌어올렸다. 최면에 걸린 듯 본능적으로 마음을 빼앗긴다”(2007년 8월 10일자)고 평가했다.

이일(58)씨는 일명 ‘볼펜화가’로 알려졌다. 그는 종이든, 캔버스든 가리지 않고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볼펜으로 무언가를 그린다. 뉴요커들이 그의 그림에 푹 빠졌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 한국관(Arts of Korea Gallery)이 지난해 말부터 한국의 전통유물 소장품 90점과 함께 이일의 작품 두 점을 걸었다(전시기간은 11월 23일~3월 27일). 그의 볼펜화는 의외로 한국의 옛 도자기들과 잘 어울린다.

사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에게 해묵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77년 4월 젊은 혈기만 믿고 뉴욕에 건너왔을 때 거처도 정하기 전에 그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나 같은 한국 화가들에게 이곳은 거대한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그 보물창고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뉴욕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됐지만 정작 자신은 “행운아”라고 낮춰 말했다. “내 작업세계를 믿고 지지해준 미술 애호가들과 내가 속한 화랑이 큰 도움을 줬다.”

이일씨의 작품들에서는 ‘선(線)’이 춤을 춘다. 볼펜으로 표현한 역동적인 선이 밝음과 어둠, 선과 면의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과연 그의 볼펜 추상화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뉴욕에 온 뒤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대학원을 다닐 때 부전공으로 동판화를 공부했는데 그때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실제로 요즘 볼펜 말고도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198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드로잉의 현재(Korean Drawing Now)’라는 전시회에서 볼펜화를 처음 선보였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선들이 기운 넘치고 팽팽한 명주실 같은 긴장감을 준다”는 평가를 들었단다. 아무렇게나 휘갈긴 듯한 선들이 모여 나뭇잎, 산과 같은 실체를 만들어낸다. 그는 “선은 주변의 상황에 따라 때론 유쾌하고 기운차게, 때론 장난치듯 다양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2007년 뉴욕의 새너제이 미술관(San Jose Museum of Art)과 퀸스 미술관(Queens Museum of Art)에서 열린 개인전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새너제이 미술관의 조앤 노트럽 큐레이터는 이일을 가리켜 “관객도 없는 텅 빈 스튜디오에서 혼자서 외롭게 캔버스를 향해 몸짓하는 퍼포먼스 화가(Performance Artist)”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에 이어 뉴요커지도 “마치 산등성이에서 추상적인 명상을 하는 듯하다”(2007년 8월 13일자)고 썼다.

2~3m에 이르는 대형 볼펜화를 본 관객들은 처음엔 의구심부터 갖기 일쑤다. “일상적인 필기도구로만 인식되던 볼펜의 친밀감에 반하는 의외성”이라고 그가 말했다. 비평가들도 그의 작품을 보며 드로잉과 그림(painting)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일은 오히려 그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 “이전에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혁신적인 시각세계를 보여주고자 상상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대학의 미술 교재 ‘드로잉의 현대적 접근법(Drawing: A Contemporary Approach, 6판, 2008년, 틸 세일 외 지음, 톰슨 러닝사 펴냄)에서는 이일의 작품 ‘무제 601’(2001년 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그림의 재료로) 볼펜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화가 이일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느다란 선으로 빈틈없이 채운 그림의 한 면과 그 면을 채운 가는 선을 일부 돌출시켜 선과 면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수백 자루의 볼펜이 사용된다. 그렇게 사용한 볼펜이 그의 브루클린 작업실 한편에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다. 볼펜 잉크(옵셋잉크)는 의외로 내구성도 좋단다. “30여 년 전 작품도 전혀 변색되지 않고 갈수록 깊은 느낌을 준다”고 그가 말했다. 처음에는 종이에 그리다가 2002년부터는 주로 캔버스에 그린다. 그는 “더 넓은 공간적 욕구가 생겼고 미술관의 크기에 맞게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캔버스를 이용하게 됐다”며 “종이는 좁고 파손되기 쉬워 선들이 손동작에 머물지만 캔버스의 견고한 공간에선 몸 전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훨씬 역동적이다”고 설명했다. 역동적인 몸놀림이 혼돈과 무질서한 그림 속에서 구도자처럼 숨어 있는 규칙을 하나하나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은 현대미술계에 액션 페인팅 기법으로 한 획을 그은 미국의 추상화가 잭슨 폴락(1912~56)을 떠올리게 한다. “폴락이 바닥에 화폭을 깔고 물감을 흩뿌린다면 나는 잘 다듬어진 화면을 벽에 세운 뒤 손에서 마치 명주실을 뽑아내듯 볼펜 선으로 화면을 휘젓는다”고 그가 말했다. 그 선 하나하나가 팽팽한 긴장감과 날카로운 속도를 머금고 투명한 거미줄에 걸린 생명체를 칭칭 감듯 살아 있는 생동감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일부 평론가는 이일의 작품을 수묵화뿐만 아니라 서예, 전통 염색, 도자기 표면 등 아시아의 문화적 배경과 연관 지어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평가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문화적 배경은 하나의 구성인자일 뿐이다. 작업에서 그런 면을 의식하는 순간 지엽적이고 싱거운 쪽으로 빠지기 쉽다”고 그가 말했다.

이씨는 1996년부터 API (Art Projects International)의 소속화가로 활동 중이다. 1993년 소호에 문을 연 API는 아시아 작가들의 현대미술을 뉴욕화단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이정옥 API 대표는 이일의 작품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뉴욕뿐만 아니라 홍콩, 파리, 도쿄, 멕시코, 인도, 영국 등에서 6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씨는 “자신의 작업세계를 외부로 향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떠받쳐줄 화랑과의 친밀한 유대 관계가 화가에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1975년 대학(홍익대 회화과) 4학년생으로 미국으로 떠날 때 주변에서 야유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단다(1년 뒤 다시 귀국해 졸업장을 받았다). “유신 시절의 엄혹한 정치적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고 뉴욕을 구체적으로 체험한 사람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뉴욕에서 이내 엄청난 경쟁의 바닷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세대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만의 뚜렷한 ‘선’을 뽑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