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바로 이 사람

이정옥, 바로 이 사람

June 26, 2008 The Korea Daily 한동신

[예술가 거리] 이정옥, 바로 이 사람

오래 전부터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아트 딜러인 이정옥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정옥은 API (Art Projects International) 갤러리 대표다. 꽤 오랜 시간 그에 대해 얘기하길 망설였던 것은 섣부르게 입을 열었다가 공연히 이정옥 대표의 정열에 시새움의 불씨만 지피는 꼴이 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내 염려는 그야말로 기우였다. 지난 18일 이정옥대표의 주관으로 빌첵재단(The Vilcek Foundation)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가 일궈낸 일들이 파격적일 만큼 대단한 선을 넘어 감동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1993년 소호에 갤러리를 시작한 이래 지난 15년간 그는 아웃사이더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한 때 미국 화단의 아웃사이더들은 이제 더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닌 당당한 뮤지엄 작가들로 군림하고 있다. '볼펜 작가'로 세계 화단에 우뚝 선 화가 이일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정옥대표다. 아직도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먼 길을 가야 하는 한국 작가들에게 이정옥과 이일의 팀 워크는 교과서가 된 지 오래다.

1990년 대 초 뉴욕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이정옥이 소호에 갤러리를 열게 된 것은 뜻밖의 계기가 있었다는 것을 나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미국의 박물관역사를 연구하던 중 궁궐을 중심으로 귀족이 맥을 이어 온 유럽의 박물관과는 다르게 교육의 장에 기초를 두고 설립된 미국 박물관의 역할에 크게 매료됐다"고 했다. 이에 쓰고 있던 논문에 구체적인 실험을 하고 싶었던것. 그래서 API가 탄생한 것이다. 마치 소호에서 작은 유엔총회가 열리듯 각 국 인종이 모여 시끌벅적거리던 이 갤러리 오프닝을 아직도 기억한다.

백인중심의 소호 화랑가에 API가 던진 충격은 신선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탄탄하게 팔짱낀 기존 화랑가를 향한 무모한 도전 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작품 판매보다는 뛰어난 작품위주'를 외치며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화가들의 작업실을 찾는 '원대한 이상을 품은 또 하나의 애숭이 화상'으로만 여겨 졌던 이정옥.

그 '애숭이'는 화가들의 국적이 어디든 그들의 백그라운드가 어떠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의 오리지날리티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의 정열을 높이 평가한 그룹은 다름 아닌 바로 콧대 높은 평론가들이었다. 이제 막 문을 연 API의 전시는 판매의 부진함으로 휘청거렸지만 수준높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숨가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죽마고우가 된 어느 평론가가 "API에서 오는 보도자료가 바로 예술작품이었다"고 회고하듯 반듯하게 화랑을 유지하려는 초심에 사활을 걸었던 무렵 이정옥은 화가 이일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뉴욕화단에 한국 화가를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이일씨의 스튜디오에서 그의 작품을 대했을 때 한동안 멍청하게 바라만 봤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이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의욕으로 지난 10여 년 간 달려 온 것 같습니다."

산호세 현대 미술관과 퀸즈 뮤지엄에서 개인전을 끝낸 이일씨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이정옥대표가 한 말이다.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한 파티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이일씨는 "어쩌면 브루클린 작업실의 창고에 휴지조각으로 뒹굴 뻔했던 작품들이었다"는 말만 되뇌 이며 계속 울기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함께 걸어 온 이일의 아내 이수임도 함께 울고 있었다.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 본 나는 그 눈물의 참 뜻을 잘 알고 있다. 원대한 꿈을 안고 뉴욕으로 옮겨 와 화가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던가. 그것은 이미 예고된 고생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은 잡초처럼 때로는 급류에 떠 밀려 흘러야만 한다. 누가 뭐래도 세계작가반열에 오른 이일의 눈가에 아직도 쓸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차이나타운 에서 티셔츠를 흔들며 '세일!'을 외치던 그 기억을 이제는 웃으며 얘기하는 자신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에서 내로라 하는 박물관에 버젓이 걸려 있는 저 작품들은 엄동설한에 꽁꽁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그렸기 때문이다. 5000 개의 볼펜으로 마구 그어대던 그의 분노를 보고 '무서운 열정과 에너지'라며 덥석 그의 손을 잡은 이정옥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이일 씨 같은 작가가 있기에 내 역할이 있는 거지요. 일이라든가 돈벌이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나와 화가들 그들과 나는 서로의 내면을 투명하게 알려 주는 영혼의 친구들입니다. 함께 걷고 있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지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의미를 알고 사는 우리 모두를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45920